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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패션 명품 브랜드 Chloe (끌로에) 유래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by sjjhcy 2023. 4. 20.

Chloe 끌로에는 오늘날 일상복이라고 불리는 '레디 투 웨어' 용어의 시초를 만든 명품 패션 브랜드입니다.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끌로에

 

1952년에 설립하여 기존의 맞춤복이던 ‘오뜨 꾸 뛰르’ 형식을 벗어나 부드러운 고급 원단들을 사용해 일정한 사이즈를 가진 여성복 옷을 만들어 내면서 세간의 화제를 주목시켜 지금의 명품 브랜드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패션 하우스 입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 가비 아기옹은 본명 ‘가브리엘라 아노카’로 어느 담배 공장 관리자의 딸로 태어나 1940년 친한 친구였던 레이몬드 아기옹과 결혼을 하였으며 1945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를 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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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한창 유행이었던 고급스러웠던 맞춤 여성복이 아닌 입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성복을 만들어내자는 이상을 가지고 1952년 끌로에를 설립하게 됩니다.

정교하고 고급의상이라는 특징은 살리면서 여러 번의 피팅을 거쳐야 하였고, 대량생산이 쉽지 않았던 오뜨 꾸 뛰르의 단점 이라함은 없앨 수 있는 일상복을 만들어내기 위한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 끌로에는 아기옹의 주거 아파트 위 가정부 방을 작업실로 사용했고, 1953년 그녀의 파트너인 Jacques Lenoir와 손을 잡고서 1954년부터 본격적으로 끌로에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아기옹과 Jacques Lenoir이는 1956년 파리의 문학 카페인 르 카페 드 플로르란 곳에서 첫 번째 컬렉션을 개최했습니다.

 

끌로에끌로에끌로에

 

아기옹이 디자인하고, 렐룽이라는 직원이 만든 작품을 입은 모델들이 테이블별로 커피(카페라떼)를 마시는 기자들 사이사이로 오가며 자연스럽게 선보였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유능한 특출한 젊은 신진 디자이너를 대거 고용하기 시작했고, 명품 패션 하우스로서의 위상이 점점 높아져 갔습니다.

 


​1966년 독일 출신의 하이 패션 아이콘이며 팬디, 생로랑 등 유명 명품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로서 활동한 칼 라거펠트를 회사의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하면서 70년대를 상징했었던 대표적인 브랜드로 부상하게 됩니다.
​70년대의 프랑스의 아이코닉함이란 아름답고 섬세한 장식과 부드러운 원단의 활용으로 자유분방하고 젊은 여성미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포레타포르테(레디 투 웨어)’의 대표주자이자 로맨틱한 여성미를 강조한 브랜드로서 끌로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으며 추후 향수 등 사업을 더욱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끌로에끌로에

 

1983년 칼 라거펠트 디자이너가 떠나게 되고, 1985년 아기옹도 회사를 매각함으로써 경영에서 물러났지만 1997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스텔라 멕카트니가 자리하면서 끌로에는 다시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처음 폴 메카트니의 이름을 활용하였던 마케팅을 위한 역임이 아녔느냐는 추측이 난무했었지만, 그녀의 첫 번째 컬렉션으로 자질이 인정되었고, 쇠락하고 있던 끌로에를 다시 새롭게 부활시키는 절대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스텔라 멕카트니 제안으로 끌로에의 직원으로 합류하게 된 피비 파일로는 2001년에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패딩턴 백 등의 잇백을 배출했으며,  2004년과 2005년 사이 매출 약 4배 이상의 엄청난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2006년 마르니 명품 브랜드를 담당했었던 멜림 앤더슨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하게 되었으며, 2008년에는 한나 맥기본이 역임하였으나 오래가지는 못하고 2011년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인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영입을 하면서부터 히트 백을 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끌로에끌로에끌로에

 

 

현재까지도 꾸준히 스테디셀러에 이름을 올리게 된 여성스러우면서도 남성적인 탑 라인으로서 이중적인 면모를 지닌 퀄팅과 드류 소재의 페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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